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엥겔스 (문단 편집) == 평가 == > 영국에서 대규모 산업이 시작되는 시기부터 1845년까지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겠다. 상세한 설명을 원하는 독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 >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본질에 대한 엥겔스의 통찰이 얼마나 완벽한 것이었는지는 그의 책이 출판된 이후에 나온 각종 공장 보고서, 광산 관련 보고서 등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 >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 관련 메모 > 엥겔스의 기여는 단순한 사실 제공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은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 『정치경제학 비판 개요』가 공산주의 이론의 선구적인 텍스트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엥겔스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를 탈헤겔화했다. >---- > 대중 정치 운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자본론이나 결국은 실패한 제1인터내셔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880년대 엥겔스가 쓴 수많은 팸플릿과 선전물로 시작된다. 엥겔스가 고인이 된 동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마르크스주의를 인류사에서 가장 설득력 있고 강력한 정치철학 가운데 하나로 발전시킨 것이다. >----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엥겔스 평전 / 트리스트럼 헌트 '''[[카를 마르크스]],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사회주의 사상의 근간을 닦은 인물'''이다. '''19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별명도 붙었다. 이런저런 일화가 보여주듯이 학자와 사상가로서 업적도 마르크스에게 밀리지 않고[* 마르크스와 동업의 계기가 된 맨채스터 노동자들의 삶의 실태 조사도 그렇고, 가정과 결혼 제도의 분석을 정치경제적 분석에 끌어 올리는 등, 마르크스주의를 단순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비전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많은 현상의 치밀한 분석과 통계적 연구에 기반한 하나의 과학적 사상체계로 끌어올린건 엥겔스의 공이 지극히 크다. 세간에서 잘못 알려진거와 달리 결코 마르크스의 명성에 캐리 받은거 아니고, 마르크스랑 무관하게 살았어도 엥겔스는 위대한 사회학자로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 인성적인 면에서는 마르크스보다 훨씬 좋았다. 사방에 적을 만들고 다녔던 마르크스와 달리, 엥겔스는 부유층 출신으로 태어나 사회 연구를 위해 빈민계층에 뛰어들어서 메리 번즈를 아내로 맞을 만큼 인망도 좋았고, 마르크스 생전이나 사후에나 엥겔스가 주관하는 파티는 유감없이 하객들 호강시켜주는 대범함으로도 유명했다. 엥겔스는 엄연히 '''19세기''' 인물이었고 현대 21세기 기준으로 그의 도덕성을 따지기는 애매하다. 엥겔스는 주변 정적들과 싸울 때 인종 문제를 약점잡을 때가 없지 않았는데, 이 외에도 맨체스터의 [[실러]] 연구소 회원 중에 유대인이 너무 많다고 불평한 적이 있으며, 주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서유럽인이 흑인이나 슬라브족, 아랍인보다 훨씬 문명화되었다는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인종 문제를 둘러싼 현실 정치 문제에서는 거의 언제나 당시 기준으로 무척 진보적인 편에 섰다. 미국 [[남북전쟁]]에서는 북부연합을 지지했고, 1865년 [[자메이카]] 모란트베이 반란 때 영국 총독이 저지른 현지인 흑인 학살 행위를 비판했다. 반유대주의 성향이 없지 않았지만 1870년대 말 독일에서 유대인 박해가 다시 등장하자[* 당시 독일의 반유대주의는 사회주의 진영이건 보수파 진영이건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를 크게 비판한 바 있다. 엥겔스는 진심으로 반유대주의를 후진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이며 "타락한 사회계층이 현대 사회에 대해 보이는 퇴행적인 반응에 불과하며, 반동적인 목적에 이용당할 뿐"이라고 규탄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반유대주의와 적극적으로 싸우라고 촉구했으며, 유대인들이 사회주의 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엥겔스는 아일랜드 관련해서도 아일랜드인 관련한 경멸적인 편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일랜드인 여성과 결혼하고 리디아 번즈를 자랑스러운 아일랜드인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부르며 그녀를 도와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사람으로서, 유대인 관련한 그의 견해와 행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엥겔스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리지는 못했지만 한편으로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반유대주의는 결국 역사가 발전하면서 소멸해야 되는 것이라고 믿고 이를 실천에 옮겼던 사람이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